생각해보니 근 5년동안 네개 도시(서울, 부산, 진천, 싱가포르)에서 살아본 것 같은데 서울이 제일 뭔가.. 정신이 나간 도시인건 맞는 것 같다. 화려한 하수구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붙였단 건 인정하지만, 특히 젊은사람을 품고 다시 길러서 출산까지 이끄는 , “재생산(reproduction)” 기능으로만 고려해보면, 우리나라 전반적으로도 그렇지만 특히 서울은 도시로서는 불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부산에 살때도 서울에 일로 오든 놀러 오든 한달에 한번정돈 왔는데, 막상 살아보니 겉만 번지르르한 동네다. 싱가포르와 비교하면 싱가포르는 비싼만큼 값어치를 했던 것 같은데, 서울은 싱가포르보다 조금 싸지만 그 가치는 영 값을 못한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가치에 비해서 가격표만 비싸단 것인데, 부산과 비교해보면 인프라가 20%정도 더 좋은 것 같은데(그마저도 일상 인프라가 아니라 advanced한 문화, 공연인프라 같은 거다), 그 인프라를 나눌 사람은 200% 정도가 많다. 즉 인프라가 조금 더 좋긴 한것은 맞는데 그걸 쪼개먹을 사람이 곱절은 많다보니 실제 부산과 비교하면 더 불편하고, 불쾌하기 때문에 그 인프라를 누리는 건 더 못한 것 같다. 물론 부산도 사람이 많다. world standard로 보면 부산도 대규모 도시에 해당한다. 출퇴근 시간에 버스와 지하철은 사람과 부대끼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나 서울처럼 사람이 많아서 지하철을 하나 보내주고 다음 거를 타진 않는다. 동네차이와 교통수단의 차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면 부산의 1급지에 해당하는 해운대와 서울의 1급지인 강남 쪽을 비교해도, 일상적 측면에서 그닥 나은 게 없다. 내가 살고있는 홍대와 신촌도 마찬가지이다. 뭔가 조금 더 재미는 있는 것 같은데 터무니없이 사람이 많고, 웨이팅을 하며 시간을 날린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도 가끔해야 재미있는 거다.
자, 좋은 동네 말고 열악한 동네랑도 비교해보자. 다소 열악한 동네들을 봐도 그렇다. 부산의 경우는 열악한 동네들을 가봐도 무섭다는 생각은 안든다. 뭔가 으스스하지만 사람이 그만큼 적게 살기 때문에 대낮은 그냥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옛날 동네같다. 그러나 서울의 열악한 동네들은 다르다. 동네를 이야기 하진 않겠지만 열악한 동네에 사람이 몰려 사는 경우는 사람에 의한 공포감이 있다. 수치로 설명하는게 빠를 것 같아서 예를 들면 부산에서 열악한 동네들이 300m간격으로 술주정뱅이나 거동수상자가 있다면, 서울은 100미터 간격으로 있다. 솔직히 부산에서 조금 후진 동네에 내 아이나 조카를 혼자 초등학교 통학을 시킨다면, 낮에는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것 같은데, 서울에서는 단 10분도 그 동네 길거리에 홀로 세워놓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든다.
대중교통보다 자가용을 선호하는 이유도 부산은 빠르고 쾌적해서지만, 서울은 쾌적 뿐이다.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녹지나 천변, 해안과 같은 자연경관이 인구에 비해 너무도 부족하고, 관련 배후지역도 자동차가 없으면 도달불가능하다. 이건 내 주장이 아니라 도시관련 학자들의 말이다. 내가 학교오는 걸 제일 재미있어하는 것도 공부나 연구나 주변 사람들이 좋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학교 밖에 서울이 그렇게 매력적인 공간으로 안다가오기 시작하고는 더 심해진 것 같다(캠퍼스 녹지는 질릴듯 와도 녹지는 녹지다).

물론 커리어 쌓기에는 부산보다는 좋다. 나같이 대학원 다니는 경우는 연구중심 대학이 서울에만 있어서 당연하다(KAIST, IST, 포공 제외). 지식산업+제조업이 공진화하는 현 산업생태에 있어서는 당연히 서울이 낫다. 연봉도 다소 높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렇게 커리어를 개발하는 데도 삶이 더 낫지 않는 다는 거다. 특히 우리나라같이 일 자체의 가치를 따라 진로를 설정하기 보다 안정성+수익에 근거하여 나은 삶의 도구로써 커리어를 만드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은 상황에서도 뭔가 이상하다. 즉 개인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커리어 때문에 서울로 들어오긴 하는데, 투입대비 삶 개선에 있어 가성비가 극악인 것이다. 분명 더 나은 삶을 위해 서울로 왔는데, 인풋만 엄청나고 바라는 나은 삶은 크게 없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이러한 부조화와 유격 속에서 우울증과 같은 정신건강관련 척도는 항상 최고수준이며, 행복감이 바닥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이나 출산은 이미 생각범위 밖에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서울지역의 출산율, 결혼률이 전국 최악인 것이다. 이걸 깨닫고 나서는 서울이란 도시에 ‘화려한 중력장 하수구’라는 말을 붙이게 된 것 같다. 전국의 젊은이들을 다 흡수하지만 그들에게 실제로 나은 삶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건 없으며 reproduction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면대 경사에 미끌려 하수구로 들어간 물이 그 밖으로 역류하지 않는 것 처럼 말이다(역류하면 냄세가 나겠지).
월소득 기준 중산층에 속한다면(사실 우리나라 중산층의 두드러진 특징은 자기가 중산층이 아니라 서민이라 생각한다는 것이긴 해서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얼추 자신이 중산층이라 생각하면 된다. 객관적으로 중산층이 많은 나라이다. 참고로 이는 정책 설계의 왜곡을 낳으며 개인의 행복감에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문제중 하나다), 서울에서의 삶의 질과 부산에서의 삶의 질은 하늘과 땅차이로 나고, 청년세대에겐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이는 실제 부울경 출생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간 케이스와 부울경에 남아있을때 자가소유여부, 결혼여부, 출산여부, 행복도를 비교한 최근 보고서에서 잘 나타난다. 보고서에서는 지역거점도시에서 일자리만 잘 잡으면 수도권에 비해 자가소유, 결혼과 출산, 개인의 행복추구에서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 결론이다. 이를 앞선 문단의 내용과 합쳐 정책적으로 풀어보면 서울에는 인프라를, 지역에는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 거꾸로 이루어지고 있다. 난 솔직히 신산업이나 물류와 연관된 서부산-강서 지역개발을 제외하고는 지하철과 대심도, 아파트들을 증축하는 지 모르겠고(예를들면 4호선), 서울에 이제 필요한 문화인프라 시설은 n만명 이상 수용가능한 공연장 뿐인데(블랙핑크가 서울에서 공연을 안하는게 아니다. 공연장 크기 때문에 못하는 거다), 이건희 미술관을 왜 또 서울에 유치한지 모르겠다. 사실 알고있다. 누구나 표는 하나씩 들고 있으니까.

이건 개인차가 있겠지만 서울에 상경한 사람들 중, 유독 다른 지역사람들에 비해서 부산사람들이 자기 본가인 부산에 애착이 있다고들 한다. 그치만 순수한 애착이 아니라 앞선 문단들을 통해 설명된다(부산밈도 재미있긴 하다). 서울은 다른 소도시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매력적인 도시일 수는 있지만 얼추 인프라들이 다깔린 광역시급 도시들이나 지역거점도시에 비해서 확연하게 삶의 질이 낫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들이 많다. 난 사실 사는데에 큰 애착이 없다. 아버지는 날 사투리마저도 대화하는 사람에 맞춰 바뀌는 요상한 친구라고도 한다. 날마다 아버지랑 전화할때 싱가포르 살때는 아 그냥 여기서 살 생각도 있다고 진심반 장난 반으로 이야기 했고, 진천 살때도 아 청주 좋은 것 같다고, 여기도 병원생기면 살만할 듯 이라면서 어디에 꼭 살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서울와서는 부산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다른 도시는 인프라 없어서 난리인데 여기는 젊은사람들이 서울로 다 올라와서 침체가 된다니… 개탄스럽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도 있다. 가끔 부산에 내려가면 부동산 임장을 다닐 때가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방이 망했다고 하지만 또 자본이 이동하면서 그에 따라 투자처를 따라서 지방의 큰 손들은 또 투자를 통해서 돈을 벌고있다. 다만 서울과 다른 것이 있다면 가격지표에 따른 시장온도의 영향 뿐만 아니라 실제로 가치가 있는(거주든 생산이든) 방향으로 투자처가 옮겨지는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지방이 망한다고 할때 누군가는 실제 상품에 반영된 가치와 기능을 따라 움직이며 돈을 벌어들이고 있으며, 그에 따른 공간의 재편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걸 보면서 역시 직접 보는거랑 부정성에 민감한 대중에 호소하는 미디어를 구분해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두서 없이 써봤고 개인적인 주관성이 매우 강하지만, 2년동안 서울에 살면서 서울과 부산에 대해서 다시금 느낀 것들이다. 사실 여기 중간중간에 철학적인 내용이나 경제학적인 내용, 한국의 맥락도 중간에 녹여내면 더 좋은 글이 될 것 같긴한데, 이는 논문이나 나중에 기회가 되면 좀더 제대로 써서 컬럼이나 북챕터로 써보고 싶다. 아무쪼록 더 쓰고싶은게 많은데, 블로그 글이니까 대충한번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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